유럽 상표(EUTM)는 왜 쉽게 등록되지만, 왜 자주 분쟁이 날까
“등록은 쉬운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
유럽상표(EUTM)을 처음 접하는 기업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유럽 상표는 심사 단계에서 상대적 거절사유, 즉 선행상표와의 유사성 검토를 엄격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생각보다 쉽게 등록된다”는 인상을 받기 쉽죠. 하지만 실무에서는 등록이 아니라 공고 이후부터가 시작입니다.
EU 제도는 유사 상표를 심사관이 미리 걸러내기보다는, 공고 후 3개월 동안 이해관계인이 직접 이의신청을 제기해 제동을 거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기엔 굉장히 특이한 상표제도 운영방식이지요. 그래서 분쟁과 비용은 심사 단계가 아니라 공고 이후에 집중됩니다.
제가 2023~2024년에 독일·프랑스 판매를 전제로 한 한국 화장품 업체의 EUTM 출원을 진행했을 때도, 공고가 뜨는 시점부터는 “이의신청이 한 건은 들어온다”를 기본 가정으로 일정표를 다시 짰습니다. 실제 대응 전략은 그 이후에야 갈렸습니다.
왜 EUTM에서는 이의신청이 잦을까
EUTM은 EU 27개국을 한 번에 커버하는 단일 상표입니다. 관리 주체는 EUIPO이고, 심사는 절대적 거절사유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선행권리와의 충돌은 공고 후 이의신청 절차에서 처리되는 비중이 큽니다.
이 구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현상이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한 번의 출원으로 27개국이 걸려 있어, 선행권리 풀(pool)이 매우 넓다
심사 단계에서 유사성으로 강하게 걸러지지 않는다
권리자들은 공고를 기준으로 감시(watch)하고, 이의신청으로 직접 방어한다
결과적으로 “유사 여부를 좁게 본다”는 체감이 생깁니다. 제도가 느슨해서가 아니라, 심사 대신 이해관계인에게 방어 책임을 넘긴 설계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EUIPO의 상표 공고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다
공고는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버튼이 아닙니다. 실무적으로는 ‘알림 트리거’에 가깝습니다.
공고가 뜨는 순간, 권리자 측의 감시 시스템이나 내부 모니터링에 걸립니다. 그리고 이의신청 가능 기간은 출원 공고 후 정확히 3개월로 고정돼 있습니다. 이건 관행이 아니라 제도입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유럽에서는 이의신청이 “운 나쁘게 걸리는 사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EU 단일 권리 특성상, 공고는 27개국 전체 시장을 향한 신호가 됩니다. 출원인이 특정 국가만 염두에 두고 있어도, 상대방은 EU 전체 충돌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의신청으로 수출 일정이 흔들릴 수도
EUTM은 심사기간이 짧은 편이어서 “보통 6개월이면 등록”으로 이해하고 일정을 짜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게 이의신청이 없을 때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공고 후 3개월은 단순한 대기 기간이 아닙니다.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그 시점부터 등록 일정은 사실상 분쟁 일정으로 전환됩니다.
출시 일정에 미치는 영향
포장·라벨 인쇄, 유통 채널 계약, 아마존·리테일 입점 과정에서 등록번호를 요구하거나 사실상 전제로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의신청이 걸리면 등록번호 확보 시점이 불확실해지고, 내부 승인이나 론치 일정이 연쇄적으로 밀립니다
EU 27개국 단일 권리 구조라, 한 건의 이의신청이 전체 EUTM을 묶어 세웁니다
국가별로 쪼개서 쓰는 전략을 검토하더라도, 브랜드 차원에서는 “EU 전체 사용” 계획을 보수적으로 다시 짜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의신청 절차가 길어지는 이유
이의신청은 단순히 “이름이 비슷하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지정상품·서비스 범위, 선행권리의 강도, 실제 사용 여부나 평판 주장까지 쟁점이 확장됩니다. 절차 자체도 당사자 간 공방을 전제로 설계돼 있어, 짧게 끝나기 어렵습니다.
실무에서는 내부 일정표를 “공고 후 3개월 + (이의신청 시) 추가 수개월”로 잡는 게 현실적입니다.
비용 리스크는 어디서 커질까
이의신청이 잦다는 건, 예산 구조가 “출원비 중심”이 아니라 “방어비 중심”으로 바뀐다는 뜻입니다.
1) 대응 착수 비용
이의신청 통지가 오면 동시에 여러 일이 터집니다.
내부 검토(브랜드, 영업, 법무)
대리인 의견서
유사·혼동 가능성 분석
지정상품·서비스 리스트 재검토
출원 단계에서 의미 없이 넓혀둔 지정상품이 있을수록, 공격 포인트가 늘어나 비용이 커집니다.
2) 범위 축소로 인한 사업 손실
이의신청 대응에서 자주 쓰이는 카드가 지정상품·지정서비스 축소입니다.
등록 가능성을 높이는 대신, 원래 계획했던 카테고리를 포기하거나 우회하게 됩니다.
3) 공존 합의의 불확실성
이의신청은 판결보다 합의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얼마면 끝나느냐”가 초기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금액보다 사용 방식, 국가, 표기 방법, 카테고리 제한 같은 조건이 사업을 제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의신청이 걸리면 EU 27개국 단일 권리가 함께 멈춰 출시 일정과 예산이 흔들리는 모습을 표현한 이미지
실무에서 잡아야 할 기준점
“선행상표 검색을 하라”는 말은 맞지만, 거기서 끝나면 교과서입니다.
실무에서는 검색 결과를 어떻게 출원 설계로 바꾸느냐가 핵심입니다.
제가 EUTM을 설계할 때 먼저 보는 기준은 이렇습니다.
지정상품·서비스는 “넓게”가 아니라 “맞게”
EU 이의신청은 대부분 상품·서비스 유사 범위를 타고 들어옵니다.
사업 계획과 무관한 과도한 지정은 권리를 키우기보다 공격 표면적을 넓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고 후 3개월을 일정표에 명시하기
EU 출시가 걸려 있다면, 내부 일정표에 공고 후 3개월을 그냥 대기 기간으로 넣어야 합니다. 등록 예상일을 앞당겨 잡아두면, 이의신청 한 번에 전체 계획이 흔들립니다.
“등록되면 끝”이라는 전제를 버리기
EUTM은 등록 문턱이 낮아 보이는 대신, 공고 이후 시장이 직접 걸러내는 구조입니다. 목표를 “등록”이 아니라 “공고 구간을 통과할 수 있는 설계”로 잡아야 안정됩니다.
정리하며
유럽에서 이의신청이 잦은 이유는 기업이 공격적이라서가 아니라, EUTM이 상대적 충돌을 심사가 아니라 이해관계인 이의신청으로 처리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말한 시간·비용 리스크는 실제로 이의신청이 들어오는 경우를 기준으로 한 이야기이며, 업종·표장 강도·지정상품 설계에 따라 체감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등록 가능성만 보고 출원하면, 공고 후 3개월과 그 이후 절차에서 시간과 비용이 뒤집힙니다. 이 구조를 전제로 출원 범위와 일정을 설계하면, 같은 비용으로도 리스크 체감은 확실히 줄어듭니다.
참고로, 이 글에서 말하는 EUTM은 유럽연합 지식재산권청 EUIPO를 통해 등록하여 유럽연합 전체에 권리가 미치는 유럽 상표를 의미하는데, 마드리드 국제상표의 지정국으로 유럽연합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EUIPO에서 심사가 진행되며 그 취급은 위에서 설명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편, 마드리드 국제상표의 지정국으로 유럽연합 EU를 지정했다가 이의신청으로 상표권 확보가 좌절된 경우의 플랜B에 대해서는 별도의 포스팅으로 준비했으니 참고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