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목을 골랐고, 그 자리에서 생기는 마찰과 플러스알파까지 정했다고 해봅시다. 이 과정은 ‘길목은 위치, 발명은 마찰에서 나온다’에서 다뤘는데요. 그리고 밖에서 보이는 형태로 권리를 걸어야 돈이 된다는 이야기는 ‘돈되는 특허는 따로 있다, 밖에서 보여야 돈이 된다’에서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관문이 하나 남습니다. 그 특허를 어떻게 써야 나중에 무효로 죽지 않느냐는 겁니다. 특허는 한번 등록됐다고 영원히 안전한 게 아니고요, 등록 후에 무효가 되는 가장 흔한 이유가 진보성 부족입니다. 이미 알려진 기술들로부터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건 독점시켜 주지 않는다는 원칙이죠. 이번 포스팅에서는 같은 발명을 받아들고도 누구는 쉽게 죽는 특허를, 누구는 오래 버티는 특허를 만드는 차이가 어디서 나오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특허는 갖다 붙인 형태입니다
실무에서 개발자가 들고 오는 아이디어는 대개 이미 알려진 요소기술 두세 개를 나란히 놓은 형태입니다. "A 기술이랑 B 기술을 같이 썼습니다" 하는 식이죠. 그리고, 보통은 그걸 있는 그대로 청구항에 적습니다. "A와 B를 포함하는 장치." 그런데 이렇게 쓰면 심사관이나 무효심판을 건 상대방은 이렇게 읽습니다. "A도 공지, B도 공지, 각자 원래 하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니 그냥 합쳐놓은 것이다." 이걸 업계에서는 단순 병치라고 부르는데요, 진보성이 부정되는 가장 전형적인 경로입니다.
반대로 진보성이 인정되는 결합은 모양이 다릅니다. A의 동작이 B의 출력을 전제로 하거나, B가 A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 그러니까 하나를 빼면 다른 하나가 제 기능을 못하는 관계입니다. 이걸 의존적 결합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구분 | 단순 병치 | 의존적 결합 |
|---|---|---|
두 요소의 관계 | 각자 일하고 효과가 더해짐 | 한쪽의 동작이 다른 쪽의 출력·상태에 좌우됨 |
하나를 빼면 | 남은 쪽은 그대로 작동 | 남은 쪽도 제 기능을 못함 |
청구항 표현 | "A와 B를 포함하는" | "A의 출력에 응답하여 B가 ~를 결정하는" |
진보성 판단 | 쉽게 부정됨 | 결합관계 자체가 특징이 될 수 있음 |
그래서 청구항을 쓸 때는 의존관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같은 구성이라도 "포함하는"으로 나열하면 병치로 읽히고, "응답하여", "기초하여 결정하는"으로 엮으면 결합으로 읽힙니다. 다만, 말로만 엮는다고 되는 건 아니고요, 그 의존관계가 기술적으로 실제 있어야 합니다. 그 실제 의존관계를 어디서 찾느냐, 이게 오늘의 주제입니다.
산업용 용접기를 3차원으로 제어한다는 아이디어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개발자가 "산업용 용접기를 3차원으로 제어하겠다"는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합시다. 좋은 아이디어인데, 뜯어보면 요소기술이 전부 공지기술입니다. 용접기도 있던 거고, 3차원 제어도 있던 거고, 경로를 짜는 방법도 다 있던 겁니다. 이걸 그대로 "용접기를 3차원 경로로 제어한다"고 적으면 바로 죽습니다. 용접기 공지, 3차원 제어 공지, 갖다 붙인 것뿐이라는 한마디면 끝이거든요.
그런데, 이 발명을 분해해서 다른 각도로 들여다보면 겉으로 안 보이던 제약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용접기를 3차원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다 보면, 전류를 만들어내는 인버터와 실제로 용접이 일어나는 끝부분(엔드이펙터) 사이의 거리가 일정 구간 안에 들어와야만 합니다. 이 거리가 벗어나면 용접 품질이 망가지거든요. 3차원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은 욕심과, 그 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물리적 제약이 서로 부딪히는 겁니다. 개발자도 현장에서 몸으로는 알고 있었겠지만 또렷한 문장으로 의식하지는 못했을 수 있는, 숨은 마찰이죠.
이 숨은 제약을 끌어내서 청구항을 이렇게 다시 씁니다. "3차원 제어 경로를 생성할 때, 인버터와 엔드이펙터 사이의 거리가 소정 구간 이내이면 그 경로를 확정하고, 그 구간을 벗어나면 위치를 이동시켜 거리를 맞춘 다음 경로를 다시 생성한다."
같은 발명인데 완전히 다른 특허가 됐습니다. 이제 경로 생성은 거리 판단의 결과에 따라 달라지고, 거리 판단은 경로가 있어야 의미가 생깁니다. 하나를 빼면 다른 하나가 제 기능을 못하는 관계, 앞에서 말한 의존적 결합이 된 거죠. 그래서 이 특허는 세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갖게 됩니다. 거리니 구간이니 구체적인 한정이 붙어서 좁아 보입니다. 그런데 3차원 용접을 제대로 하려는 사람은 누구든 그 거리 문제를 풀어야 하니,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한정이 구체적이라 이걸 정확히 겨냥한 선행기술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워서, 죽이기도 어렵습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 거리 제약이 정말 필요하다는 걸 말로 갖다 붙이면 안 되고, 명세서 안에 측정 가능한 근거로 미리 심어둬야 합니다. 거리에 따라 용접 품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구간을 어떻게 정하는지까지요. 그래야 나중에 "사후에 끼워 맞춘 것 아니냐"는 반박을 견딥니다. 수치나 임계값을 청구항에 썼다면 그 값을 얻는 방법이 명세서에 있어야 한다는 것, 이건 나라를 불문하고 통하는 원칙입니다.
시너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최근 흐름
이게 왜 갈수록 중요해지느냐면, 진보성 판단이 점점 깐깐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특허청(EPO) 기술항고심판부의 T 1639/21 결정(2024년 3월)이 좋은 예인데요. 이 사건은 mRNA 백신과 면역관문 억제 항체를 함께 쓰는 조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허권자는 두 성분 사이에 시너지가 있다는 점을 내세웠는데, 심판부는 시너지 그 자체만으로는 진보성이 인정되지 않고, 선행기술에 비추어 그 시너지가 합리적으로 예상될 수 있었다면 자명하다고 봤습니다. 분야는 바이오지만, 메시지는 기계나 전자 쪽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둘을 합쳤더니 좋아졌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좋아짐이 예측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야 한다는 거죠.
여기에 하나가 더 얹힙니다. 진보성은 "그 분야의 통상의 기술자"가 쉽게 생각해낼 수 있었는지로 판단하는데요, 그 통상의 기술자가 인공지능 도구를 일상적으로 쓰는 사람이라면 기준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아직 특허청이나 법원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고, 이건 제 추론입니다. 다만 몇 년 안에는 반드시 논의가 시작될 거라고 봅니다. 인공지능에게 "A와 B를 합치면 어떨까"를 물으면 그럴듯한 조합을 잔뜩 내놓으니, 결합 그 자체는 점점 더 자명한 쪽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때 남는 진보성 논거는 "이 제약들을 전부 만족하는 형태는 이것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용접기 예시에서 거리 제약이 하는 역할이 바로 그겁니다.
숨은 마찰을 찾는 건 공정으로 됩니다
기존 글에서는 이 마지막 단계를 통째로 "변리사의 천재성"이라고 불렀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중 상당 부분은 재현 가능한 작업입니다. 숨은 제약을 끌어내는 일은 영감에만 기대지 않아도 됩니다. 두 기술이 만나면 어긋나는 지점은 대충 정해진 유형이 있거든요. 한쪽은 1000분의 1초 단위로 도는데 다른 쪽은 몇 초 걸려 판단한다거나, 쓰는 데이터 단위가 다르다거나, 같은 물리적 공간·열·하중을 나눠 써야 한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용접기 예시는 마지막 유형, 같은 공간을 나눠 쓰는 데서 생기는 마찰이고요. 이런 유형을 하나씩 대입해 보면서 그 자리에 걸리는 제약을 목록으로 모으면, 숨은 마찰이 생각보다 자주 드러납니다.
그 다음은 회피로를 적어보는 일입니다. 상대방 입장이 되어서, 내 플러스알파 없이 같은 마찰을 풀 수 있는 경로를 전부 나열해 봅니다. 용접기라면 인버터를 아예 엔드이펙터 쪽에 붙여버린다거나, 케이블을 바꾼다거나, 3차원 동작 범위를 제한한다거나 하는 식이죠. 이 경로들이 결국 한곳으로 다시 모인다면, 그 모이는 지점에 청구항을 거는 게 좋습니다. 제 경험상 이게 두 번째 길목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로가 사방으로 흩어진다면 그 후보는 등급을 낮춥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경우는, 회피로라는 게 "마찰을 해소하지 않고 그냥 감수하는 것"뿐일 때입니다. 상대가 피하는 대가로 품질 저하나 원가 상승을 계속 떠안아야 하니까요.
청구항 자체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독립항은 주요 업체 몇 곳의 구조를 모두 덮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골격으로 씁니다. "~에 기초하지 않고" 같은 부정적 한정은 독립항에 넣지 않고 종속항으로 내립니다. 상대가 기능을 별도 모듈이나 계층으로 떼어내서 우회할 수 있다면, 그 분리된 구조를 별도 독립항으로 미리 잡아둡니다. 효과를 쓸 때는 "견고성이 향상된다" 같은 일반론보다, 기존 기술 계열이 원리적으로 할 수 없었던 지점을 콕 집어 적습니다. 결국 독립항이 상대의 회피 비용을 만들고, 종속항이 나중에 매수자가 따지는 가치를 만든다고 보시면 됩니다.
넓어서 못 피하는 특허보다, 좁지만 피하면 손해인 특허
많은 분들이 "청구항은 무조건 넓게"라고 생각하시는데요. 넓은 청구항은 등록 단계에서 선행기술에 걸리기 쉽고, 등록이 돼도 상대는 무효심판으로 대응합니다. 넓을수록 어딘가 옛날 문헌 하나가 걸릴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반면에, 좁지만 구체적인 청구항을 만난 상대는 계산기를 두드리게 됩니다. 피해 가는 데 드는 비용과 로열티를 비교하는 거죠.
구분 | 넓어서 못 피할 것 같은 특허 | 좁지만 피하면 계속 손해인 특허 |
|---|---|---|
상대의 첫 반응 | 무효심판, 선행기술 찾기 | 회피 비용과 로열티 비교 |
무효 위험 | 높음 | 상대적으로 낮음 |
매각 실사 | 클레임 차트가 흐릿함 | 대응 관계가 선명함 |
물론, 좁게 쓸수록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너무 좁으면 등록은 쉬워도 막는 힘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모은 제약 중에서 어기면 판매나 인증 자체가 막히는 무거운 것만 독립항에 넣고, 중간 무게는 종속항으로, 가벼운 건 실시예로 내려둡니다. 제약을 많이 모으는 것과 독립항에 넣는 것은 분리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도 남는 것은 표현입니다
여기까지는 체계로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제약 목록을 만들고, 마찰 유형을 대입하고, 회피로를 적고, 무거운 제약만 골라 독립항을 세우는 것. 그런데, 이걸 다 해도 마지막에 남는 게 있습니다. 같은 제약을 어떤 단어로, 어떤 순서로, 어디까지 일반화해서 쓰느냐. "인버터와 엔드이펙터 사이의 거리"라고 쓸지, "전원부와 작업부 사이의 전기적 경로 길이"라고 쓸지에 따라 권리범위가 크게 달라지거든요. 너무 구체적이면 상대가 단어 하나 바꿔서 빠져나가고, 너무 추상적이면 다시 선행기술에 걸립니다. 이 줄타기는 아직은 기술보다 예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에 천재성이라는 말을 남겨둔 이유도 여기에 있고요. 다만, 그 예술이 제대로 힘을 쓰려면 앞 단계의 재료가 충실해야 합니다. 재료 없이 문장만 다듬는 건 결국 말재주에 그칩니다.
이 단계에 오기까지 후보가 어떻게 걸러지는지는 ‘블로킹 특허 후보가 죽는 네 가지 이유’에, 블로킹 특허를 오래 버티게 하는 기준은 ‘블로킹 특허의 진짜 설계 기준은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에 정리해 두었으니 함께 읽어주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금 준비 중인 발명이 단순 병치로 읽힐 위험이 있는지, 혹은 이미 출원한 청구항에 숨은 제약을 끌어올려 보강할 여지가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발명 내용을 몇 줄 정리해서 보내주세요. 특히 해외출원을 앞두고 있다면, 유럽처럼 보정 범위가 좁은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청구항 구조를 잡아두는 게 훨씬 싸게 먹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