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킹 특허 상담을 하다 보면 "길목만 잘 잡으면 끝나는 거 아니에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맞는 말인데 절반만 맞습니다. 길목에 돌을 놓는 건 시작이고, 그 돌이 얼마나 오래 쓸모가 있느냐가 나머지 절반이거든요. 길목이 물리 법칙, 규제, 호환 같은 무엇에 묶여 있어야 오래 가는지는 ‘20년 가는 특허, 3년 만에 휴지가 되는 특허’에서 종류별로 정리했는데요. 오늘은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려고 합니다. 왜 하필 지금, 인공지능 시대에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블로킹 특허의 값을 매기는 기준이 되는지, 그리고 그걸 설계에 어떻게 반영하는지입니다. 블로킹 특허의 정의가 아직 낯설다면 ‘블로킹 특허란 무엇인가, 피하면 비용이 계속 드는 길목 특허’를 먼저 읽고 오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길목에 돌을 놓는 것만으로는 절반입니다
좋은 길목을 찾아서 미리 권리를 깔아두자는 이야기에는 숨은 가정이 하나 있습니다. 그 길목이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준다는 가정인데요. 지금까지는 이 가정이 대체로 맞았습니다. 기술이 바뀌는 속도가 사람의 연구·개발 속도에 묶여 있었으니까요. 한 번 자리잡은 방식은 몇 년, 길면 십수 년씩 업계의 표준적인 방법으로 쓰였고, 그 사이에 특허는 충분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술 발전에 가속이 붙기 시작하면 이 가정이 흔들립니다. 길목이라는 게 결국 기술 흐름들이 만나는 자리인데, 흐름 자체가 빨리 움직이면 만나는 자리도 같이 옮겨갑니다. 어렵게 길목을 잡아서 돌을 놓았는데, 사람들이 어느새 다른 다리로 건너다니고 있는 거죠. 돌은 멀쩡한데 그 위를 지나는 사람이 없어지는 상황입니다.
기술이 기술을 밀어 올리는 시대
지금까지 기술은 사람이 발전시켰습니다. 사람이 연구하고 사람이 개발하니 속도에 한계가 있었죠. 그런데 사람 수준에 가까운 인공지능이 연구·개발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더 나은 도구를 만들고, 그 도구로 또 더 나은 걸 만들고, 기술이 기술을 밀어 올리는 구조가 됩니다. 코딩하시는 분이라면 자기 자신을 호출하면서 한 바퀴 돌 때마다 다음 바퀴가 빨라지는 재귀 함수를 떠올리시면 대충 비슷합니다. 사실, 이게 언제 어느 정도로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모르고요. 다만 방향만큼은 이미 체감이 됩니다. 제 업무만 봐도 예전에는 몇 주 걸리던 선행기술 조사나 기술 동향 파악이 지금은 며칠이면 대충 윤곽이 잡히거든요. 개발 쪽은 더 빠를 겁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오늘의 최첨단이 생각보다 빨리 옛날 것이 되고, 잘 고른 길목도 그 속도에 휩쓸려 빈 땅이 될 위험이 커집니다.
그래서 특허 값은 시장지배력을 쥐고 있는 기간으로 매겨집니다
여기서 블로킹 특허의 설계 기준이 하나로 모입니다. 그 길목이 좋은 자리냐를 넘어서, 그 길목이 시장지배력을 얼마나 오래 쥐고 있느냐입니다. 3년 뒤면 사람들이 다 떠나버릴 길목과, 10년이 지나도 그 시장에 들어오려면 누구든 지나야 하는 길목은 똑같이 블로킹 특허라고 불러도 값이 자릿수가 다릅니다. 그리고 세상이 빨리 바뀔수록 오래 버티는 자리는 점점 귀해집니다. 대부분의 자리가 금방 낡으니, 안 낡는 자리의 값이 올라가는 거죠. 특허를 사고파는 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각 실사에서 사는 쪽이 제일 먼저 묻는 건 "이 특허가 앞으로 몇 년 동안 우리 경쟁사를 붙잡아 둘 수 있나"입니다. 남은 존속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그 사이에 업계가 다른 방식으로 넘어갈 것 같으면 값을 쳐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길목 후보를 볼 때 저희는 "이게 좋은 자리인가"와 함께 "이게 오래갈 자리인가"를 같은 무게로 따집니다.
가상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전기차 충전 쪽에 특허가 두 건 있다고 해보죠. 하나는 배터리를 더 빨리, 덜 상하게 충전하는 내부 제어 알고리즘에 대한 특허이고, 다른 하나는 충전기와 차량이 충전을 시작할 때 주고받는 데이터의 구조에 대한 특허입니다. 등록 당시에는 앞의 것이 훨씬 멋있어 보입니다. 기술적으로도 어렵고, 성능 차이도 수치로 나오니까요. 그런데 몇 년 지나 배터리 화학이 바뀌고 더 나은 충전 알고리즘이 쏟아지면, 앞의 특허는 금방 옛날 방식이 됩니다. 뒤의 것은 사정이 다릅니다. 충전기와 차량이 서로 맞물려야 하는 한, 그 데이터 구조를 혼자 바꾸면 남의 충전기에서 충전이 안 되는 차가 되거든요. 기술적으로는 덜 화려해도 시장지배력을 쥐고 있는 기간은 뒤쪽이 훨씬 깁니다.
병목은 가만히 있지 않고 옮겨 다닙니다
그런데, 오래 버티는 자리를 골랐다고 해서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여기서 실무적으로 꼭 짚어야 할 게 하나 있는데요. 두 기술이 만나는 자리에서 생기는 마찰, 그러니까 설계 전제가 서로 어긋나서 생기는 문제에도 수명이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서, 처음에는 두 기술의 시간 감각이 너무 달라서 생기던 문제가, 몇 년 뒤 칩 성능이 좋아지면서 저절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마찰을 푸는 특허는 할 일이 없어지죠. 대신 병목은 대체로 사라지지 않고 옆으로 옮겨 갑니다. 속도 문제가 풀리면 이번엔 전력 문제가 터지고, 전력 문제가 풀리면 책임 소재 문제가 나오는 식입니다. 그래서 길목 특허를 한 번 출원하고 손을 놓으면, 병목이 옮겨 가는 순간 특허는 옛 자리에 덩그러니 남습니다. 이걸 따라가는 방법이 분할출원이나 미국의 계속출원 같은 후속 출원입니다. 모출원을 일정 기간 살려 두고, 병목이 어디로 옮겨 가는지 지켜보면서 그 새 자리에 맞는 청구항을 후속 출원으로 뽑아내는 거죠. 물론, 처음 명세서에 그 내용이 어느 정도 들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저희는 처음 쓸 때부터 마찰이 옮겨 갈 만한 방향을 실시예로 넉넉하게 깔아두는 편입니다. 한 번 잡고 끝나는 돌 대신, 병목을 따라 같이 움직이는 돌을 만드는 셈입니다.
물론, 후속 출원으로 계속 따라가는 데에는 비용이 듭니다. 출원 한 건마다 관납료와 대리인 비용이 붙고, 해외까지 가면 나라 수만큼 곱해지니까요. 그래서 아무 데나 다 따라가지는 않습니다. 병목이 옮겨 간 새 자리가 여전히 기술 바깥의 무엇, 그러니까 규제나 호환이나 물리적 제약에 묶여 있는지를 다시 보고, 그렇다면 따라가고, 순수하게 기술 안쪽의 자리로 옮겨 갔다면 거기서 손을 놓는 게 맞습니다. 따라갈지 말지를 판단하는 기준도 결국 그 자리가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입니다.
알고리즘은 단단한 닻에 묶어서 씁니다
오래 버티는 설계를 청구항 차원에서 보면 결국 한 가지 원칙으로 모입니다. 빨리 낡는 것을 잘 안 바뀌는 것에 묶어서 쓰는 겁니다. 알고리즘만 청구하면 더 나은 알고리즘이 나오는 순간 피해 가집니다. 그런데, 그 알고리즘이 반드시 어떤 물리적 결과나, 규제가 남기게 강제하는 기록, 다른 제품과 주고받아야 하는 데이터 형식과 맞물리게 써두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상대가 내부 알고리즘을 통째로 바꿔도, 바깥에 드러나는 그 맞물림은 그대로 남거든요. 코딩하시는 분들께 비유하자면, 똑같은 값이라도 잠깐 떴다 사라지는 임시 변수에 담아두느냐, 디스크에 단단히 기록해 두느냐의 차이 정도입니다. 이 부분이 실제로 청구항을 쓸 때 어떻게 되는지는 ‘돈되는 특허는 따로 있다, 밖에서 보여야 돈이 된다’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뤘습니다.
가속이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어서, 나눠 겁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이야기는 기술 가속이 꽤 꾸준히 이어진다는 전제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제학자들은 현실이 그렇게 매끈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새 기술을 현장에 들여오는 데는 마찰이 있고, 공장 설비는 하루아침에 안 바뀌고, 규제는 늘 시간이 걸리니까요. 가속이 들쭉날쭉하거나 생각보다 더디면, 예전 방식, 그러니까 넓고 두루뭉술하게 권리를 깔아두는 전략이 오히려 잘 먹히는 평범한 세상이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쪽에 다 걸지 않기를 권합니다. 일부는 피하면 계속 비용이 드는 관문형 특허로, 일부는 주변을 넓게 덮는 권리 저수지형 특허로 나눠 두는 거죠. 가속이 오면 관문형이 일을 하고, 가속이 더디면 저수지형이 일을 합니다. 어느 쪽이 와도 한쪽은 살아남게 해두는 게, 미래를 맞히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봅니다.
우리 회사 특허 포트폴리오가 관문형과 저수지형 가운데 어느 쪽에 몰려 있는지, 이미 출원한 건 가운데 병목을 따라 분할·계속출원으로 이어갈 만한 게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문의 남겨주세요. 출원번호 목록만 주셔도 오래 버티는 관점에서 어디를 보강하면 좋을지 검토해서 안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