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덟 편에 걸쳐 블로킹 특허를 어떻게 알아보고 어떻게 만드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지려 합니다. 이 전략을 언제까지 쓸 수 있느냐는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앞으로 몇 년뿐일 수 있어요.
이번에도 시작 전에 짚고 가죠. 이 모든 이야기는 인공지능으로 기술 발전에 가속이 붙는 세상을 전제로 한 추론이지, 단정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먼저 그동안의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묶어보겠습니다.
물리 법칙이나 규제에 닻을 내린 길목(정션)을 찾아, 그 분야 최고 기술자의 인사이트로 "여기다" 하고 기술 결론을 내리고, 변리사의 천재성으로 밖에서 입증 가능하면서 필연적으로 맞물리는 권리로 굳힌다. 이게 지난 여덟 편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전략에는 결정적인 단서가 붙습니다. 지금 잠깐만 통한다는 겁니다. 왜 그런지가 오늘의 핵심이에요.
핵심은 '속도 경쟁'이다
이 전략이 통하느냐 안 통하느냐는 결국 두 속도의 경쟁입니다.
한쪽은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입니다. 다른 한쪽은 정션을 찾아 권리로 굳히는 속도, 그러니까 길목을 발굴하고 개발자 인사이트로 결론 내고 변리사가 특허로 만들어내는 속도죠.
지금은 이 두 번째 속도가 첫 번째를 앞설 수 있는 시기입니다. 기술이 그 길목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가서 권리를 깔아둘 시간이 있다는 거예요. 4편에서 본 "바둑판에 미리 돌 두기"가 가능한 이유가 바로 이 속도 차이입니다. 그런데 이 우위가 영원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로요.
첫째, 기술이 너무 빨라지면 권리화가 못 따라간다
지금은 기술 발전이 빠르긴 해도, 아직은 권리화가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입니다. 그래서 방향을 미리 읽고 길목에 돌을 놓을 수 있죠.
그런데 기술 발전에 본격적으로 가속이 붙으면 어떻게 될까요. 많은 분들이 앞으로 몇 년 안에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기술이 길목을 졸업하는 속도가 권리화 속도를 추월합니다. 내가 분석하고 출원하는 사이에 기술은 벌써 그 길목을 지나 저만치 가버리는 거예요. 미리 깔아둔 권리도 못 따라잡습니다. 창이 닫히는 겁니다.
둘째, 좋은 자리는 남들도 곧 알아본다
또 하나는 경쟁입니다. 내가 좋은 길목을 발견했다면, 다른 영리한 사람들도 곧 발견합니다. 나만 똑똑한 게 아니거든요.
좋은 자리는 빠르게 점유됩니다. 어쩌면 기술이 빨라지기 전에, 경쟁자들에 의해 먼저 닫힐 수도 있어요. 비어 있는 명당은 오래 비어 있지 않습니다.
'정확히 5년'이 아니라 '닫히기 전에'의 게임
여기서 오해를 하나 풀어야 합니다. 이건 "정확히 5년 뒤를 맞히는" 게임이 아닙니다. "창이 닫히기 전에 선점을 끝낸다"는 순서의 게임입니다.
창의 길이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3년일 수도, 8년일 수도 있어요. 가속이 들쭉날쭉하면 더 오래 열려 있을 수도 있고요. 중요한 건 정확한 햇수가 아니라, 창이 닫히기 전에 자리를 잡았느냐입니다. 먼저 깔았으면 이기고, 늦으면 집니다. 그래서 이건 한가하게 미룰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기업도, 대한민국도 이 몇 년을 놓치면 안 된다
선점의 보상은 비대칭적으로 큽니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분야의 피할 수 없는 길목을 미리 쥐면, 그 시장에 들어오려는 모든 거대 기업이 그 길목을 거쳐야 합니다. 그 열쇠를 먼저 쥔 쪽은 천문학적으로 커질 시장을 앞에 두고 막강한 협상력을 들고 게임을 시작하는 거죠.
이건 한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거대해지는 사람은 두 종류예요. 길목을 쥐고 직접 사업하는 기업, 그리고 그 길목 특허를 만들어 파는 발명자·전문가. 후자의 가치는 시장을 직접 지배하는 데서가 아니라, 그 지배를 가능케 하는 열쇠를 남보다 먼저 만들어내는 데서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대한민국의 자리가 있습니다. 거대한 시장을 통째로 삼키는 건 자본이 큰 쪽이 유리하지만, 열쇠를 먼저 빚어내는 일은 자본이 아니라 인사이트와 천재성의 싸움이거든요. 정션을 먼저 찾아내고, 개발자의 직관으로 결론을 내리고, 변리사의 솜씨로 권리화하는 일.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다만 이게 가능한 창이 앞으로 몇 년뿐이라는 게 문제죠. 기업도, 국가도 이 몇 년을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같은 말을 뒤집으면 — 그래서 한쪽에 다 걸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뒤집어 정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모든 그림은 "기술 가속과 시장 팽창이 실제로 일어난다면"이라는 조건 위에 서 있습니다. 단정이 아니라 조건부 전망이에요.
그래서 현명한 대응은 한쪽에 다 거는 게 아니라 분산하는 겁니다. 일부는 빠른 가속에 대비해 "피할 수 없는 관문형" 특허로, 일부는 느린 시나리오에 대비해 "넓은 권리 저수지형" 특허로요. 가속이 오면 앞쪽이 터지고, 안 오면 뒤쪽이 일을 합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지금 움직여야 한다는 건 똑같습니다.
정리하면
블로킹 특허를 만들 수 있는 건, 정션을 찾아 권리로 굳히는 속도가 기술 발전 속도를 앞설 수 있는 잠깐의 창에서뿐입니다. 기술이 너무 빨라지거나 경쟁자가 먼저 선점하면 창은 닫힙니다. 그래서 정확한 햇수를 맞히는 게 아니라 창이 닫히기 전에 자리를 잡는 순서의 게임이고, 그 몇 년이 기업에도 대한민국에도 절호의 기회입니다. 놓치면 안 됩니다.
여기까지가 "블로킹 특허를 어떻게 알아보고 만드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변화는 한 사람, 한 기업의 특허 전략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기업 전체가, 더 나아가 국가가 지식재산을 다루는 방식까지 통째로 흔들거든요.
다음 편부터는 그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AI 시대에 특허의 가치가 어떻게 재편되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우리 기업과 국가의 전략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