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킹 특허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표님들이 꼭 마지막에 물어보시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이거 언제까지 할 수 있는 건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리 길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몇 년일 수도 있고요. 블로킹 특허, 그러니까 기술의 길목에 놓여서 피하면 상대가 비용을 계속 치러야 하는 특허를 만드는 방법은 ‘블로킹 특허 개발 총정리’에 단계별로 정리해 두었는데요. 이 방법에는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효기간은 분야마다 다릅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결국 두 속도의 경쟁입니다
이 전략이 통하느냐 마느냐는 두 속도의 경쟁입니다. 한쪽은 길목이 채워지는 속도입니다. 두 기술이 만나는 자리에 누군가 논문을 쓰고, 제품을 내고, 특허를 출원해서 빈 공간이 메워지는 속도죠. 다른 한쪽은 저희가 그 길목을 찾아서, 두 기술이 만날 때 생기는 마찰을 정의하고, 그걸 푸는 발명을 뽑아서, 청구항으로 굳혀 출원하는 속도입니다. 앞의 속도보다 뒤의 속도가 빠르면 이깁니다. 길목이 채워지기 전에 먼저 가서 권리를 깔아둘 수 있으니까요. 거꾸로 길목이 출원보다 빨리 채워지면, 아무리 좋은 자리를 찾아도 출원서를 내는 날에는 이미 누군가 앉아 있습니다. 지금은 대체로 뒤의 속도가 앞을 이길 수 있는 시기라고 봅니다. 다만 모든 분야에서 그런 건 아닙니다.
창의 길이는 분야마다 다르고, 재봐야 압니다
실무에서 이 방법을 써보면 금방 알게 되는 게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나 인공지능만으로 이루어진 결합은 길목이 정말 빨리 채워집니다. 두 기술을 붙여보는 데 드는 비용이 거의 없거든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코드로 붙여보고, 되면 바로 공개하고, 오픈소스로 올리고, 논문으로 냅니다. 누가 먼저 붙였는지 따질 새도 없이 빈자리가 사라지죠. 반대로 하드웨어가 끼어 있거나, 규제나 인증을 거쳐야 하는 결합은 훨씬 느립니다. 시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시험을 해야 하고, 인증 기관의 문을 두드려야 하니까요. 붙여보는 데 돈과 시간이 드는 만큼, 길목이 비어 있는 시간도 깁니다. 그래서 이 창의 길이는 "몇 년"이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값이 아니고, 분야마다 따로 재서 알아내야 하는 값입니다. 저희는 길목 후보를 세우기 전에 그 분야 자체부터 심사하는데요, 여러 기준 가운데 가장 무겁게 보는 게 바로 이겁니다. 그 분야에서 결합점 하나가 채워지는 속도가 저희 출원 사이클보다 느린가. 이게 아니면 나머지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그 분야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럼 그 속도는 어떻게 재느냐. 대충 이런 식입니다. 그 분야에서 과거에 있었던 비슷한 결합들을 몇 개 골라서, 두 기술이 처음 서로를 언급하기 시작한 때부터 실제로 둘을 결합한 논문과 특허가 쌓이기 시작한 때까지 얼마나 걸렸는지를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그 간격이 저희가 길목을 찾아서 출원서를 내기까지 걸리는 시간보다 넉넉히 길면 해볼 만한 분야이고, 비슷하거나 짧으면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손대지 않습니다. 이 작업은 문헌 양이 많아서 예전 같으면 엄두를 못 냈을 텐데, 요즘은 AI의 도움을 받아 문헌은 기계가 세고, 마지막 판단은 사람이 합니다. 재보면 같은 업종 안에서도 어떤 결합은 길목이 오래 비어 있고 어떤 결합은 금방 채워지는 식으로 꽤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로봇은 창이 길다", "인공지능은 짧다"처럼 업종 단위로 뭉뚱그려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몇 달을 들이고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하나 털어놓겠습니다. 저도 특정 분야의 블로킹 특허 후보를 몇 달간 탐색하다가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신호가 아주 좋아 보였는데, 열심히 후보를 세우는 사이에 그 자리들이 생각보다 빨리 채워졌습니다. 그 뒤로 방법론을 바꿨고, 그다음부터 유의미한 결과물들을 얻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바꾼 것 중 하나가, 분야를 고르는 단계에서 길목이 채워지는 속도부터 재는 습관입니다. 사실, 몇 달 들인 게 아깝긴 했는데요, 계속 붙들고 있었으면 훨씬 더 많이 잃었을 겁니다.
좋은 자리는 남들도 동시에 알아봅니다
창이 닫히는 이유가 기술 속도만은 아닙니다. 경쟁도 있습니다. 내가 좋은 길목을 발견했다면, 다른 영리한 사람들도 비슷한 시기에 발견합니다. 같은 논문을 읽고, 같은 표준 회의 자료를 보고, 같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문장을 보니까요. 저는 이걸 동시 도착이라고 부르는데요, 블로킹 특허 후보가 죽는 대표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서운 건 동시 도착이 밖에서 잘 안 보인다는 점입니다. 특허는 출원하고 한동안 공개가 안 되니까, 지금 검색해서 비어 보이는 자리에 사실은 여러 그룹이 동시에 출원서를 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호가 너무 뚜렷하고, 너무 많은 사람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리는 오히려 조심합니다. 모두가 보고 있는 명당은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후보가 죽는 다른 이유들은 ‘블로킹 특허 후보가 죽는 네 가지 이유’에서 따로 정리했습니다.
몇 년인지 맞히는 게임이 아니고, 순서의 게임입니다
여기서 오해를 하나 풀어야 합니다. 이 창이 정확히 몇 년 뒤에 닫히는지 맞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가속이 들쭉날쭉하면 더 오래 열려 있을 수도 있고, 어떤 분야는 벌써 닫혔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보고 있는 그 분야에서, 그 길목이 채워지기 전에 먼저 자리를 잡았느냐입니다. 먼저 깔았으면 이기고, 늦으면 집니다. 그래서 이건 "언젠가 여유 생기면 해보자"고 미룰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닙니다. 이 순서 게임에서 할 수 있는 건 세 가지 정도입니다. 창이 긴 분야를 고르고, 그 안에서도 아직 결핍만 이야기되고 있는 앞 단계의 길목을 노리고, 출원 사이클 자체를 줄이는 것. 앞의 두 가지는 ‘"아직 표준이 없다"는 문장을 찾아라’에서 다뤘고, 세 번째는 결국 사무소가 일하는 방식의 문제라 저희도 계속 손보고 있습니다.
기업도, 대한민국도 이 몇 년을 놓치면 안 됩니다
선점의 보상은 비대칭적으로 큽니다. 앞으로 크게 자랄 시장의 길목을 미리 쥐면, 그 시장에 들어오려는 큰 기업들이 그 길목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 열쇠를 먼저 쥔 쪽은 상대가 아무리 커도 협상 테이블에 앉을 자격을 얻는 거죠. 이 과정에서 큰 이득을 보는 쪽은 두 부류입니다. 길목을 쥐고 직접 사업하는 기업, 그리고 그 길목 특허를 만들어 파는 발명자와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우리나라의 자리가 있다고 봅니다. 거대한 시장을 통째로 먹는 건 자본이 큰 쪽이 유리하지만, 열쇠를 먼저 빚어내는 일은 자본보다는 길목을 알아보는 눈과 청구항을 쓰는 솜씨의 싸움이거든요. 우리 기업과 우리 전문가들이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다만 그게 가능한 창이 분야마다 다르게,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닫히고 있다는 게 문제죠.
그래도 한쪽에 다 걸지는 않습니다
정직하게 덧붙이자면, 이 그림은 기술 가속과 시장 확대가 실제로 이어진다는 조건 위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객사에 한쪽에 다 걸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일부는 피하면 계속 비용이 드는 관문형 특허로, 일부는 주변을 넓게 덮어두는 권리 저수지형 특허로 나눠서 갑니다. 가속이 빠르면 관문형이 일을 하고, 더디면 저수지형이 일을 합니다. 어느 쪽이든 지금 움직여야 한다는 점은 똑같고요.
우리 회사가 있는 분야가 창이 긴 쪽인지 짧은 쪽인지, 지금 들어가도 늦지 않은지 궁금하시다면 문의 남겨주세요. 회사의 주력 기술과 관심 있는 결합 방향을 간단히 적어주시면, 그 분야가 이 방법이 통하는 분야인지부터 먼저 검토해서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안 되는 분야라면 안 된다고 딱 잘라서 말씀드리는 것도 저희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