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특허를 출원한 뒤 1년(우선권 주장 기간)이 다가오면 고민이 깊어집니다. 이 시기에 여러 국가에 무턱대고 개별국 출원을 진행했다가는 예산이 초기 비용 폭탄으로 돌아오기 십상입니다.
아직 수출할 국가가 명확하지 않다면, PCT 국제출원을 통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국가나 지역에 따라 우선일로부터 30개월 또는 31개월까지 진입을 유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간 동안 시장 반응, 제품 개발 현황, 투자 지표를 확인하고 진입 국가를 좁히는 것이 실무적으로 훨씬 안전한 전략입니다.
우선권 주장 12개월, 비용 폭탄을 맞게되는 이유?
우선권을 인정받으려면 최초 출원일로부터 12개월 내에 해외 출원을 완료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시점에 여러 나라에 동시다발적으로 개별국 출원(파리 루트)을 진행할 경우, 비용이 일시에 발생하여 현금 흐름에 큰 부담을 준다는 점입니다.
현지 대리인 비용: 각 국가 대리인에게 착수금 성격의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관납료: 국가별 특허청에 납부하는 수수료가 빠짐없이 발생합니다.
국가별 요건 대응: 위임장, 선언서 등 각국 서류 포맷에 맞춘 행정 비용이 듭니다.
💬 실무에서 흔히 하는 오해
"일단 출원만 해두고 나중에 천천히 대응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해외 출원은 접수되는 순간부터 국가별로 심사청구 기한, 보정 명령, 거절이유 통지(OA) 등이 각각 발생합니다. 즉, 출원 직후부터 각 나라별로 관리비가 새어 나가기 시작하는 구조입니다.
PCT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 '타이밍'을 사는 전략입니다
PCT는 한 번의 국제출원으로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제도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비용을 깎아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 선택과 본격적인 현지 비용 지출 시점을 뒤로 미룬다는 점입니다.
국제단계: 국제조사보고서와 견해서를 통해 등록 가능성을 미리 타진해 봅니다. (공통 절차)
국내단계(진입): 실제 각 나라에 진입하는 시점으로, 이때부터 번역문 제출과 함께 각국 특허법에 따른 비용이 발생합니다. 여기가 바로 국가별 비용의 본게임이 시작되는 구간입니다.
또한, 흔히 30개월이라고 통칭하지만 국가별로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30개월, 유럽(EPO)과 한국은 31개월을 적용받습니다. 따라서 실무적으로는 30개월을 마감 기한으로 잡고, 예산과 국가에 따라서 타이밍의 미세 조정을 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수출국 미확정'이라면 PCT가 기본입니다
아직 진출할 국가가 불확실한 기업은 대개 다음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바이어나 파트너사가 확정되지 않아 유통 국가가 변경될 가능성이 높음
의료, 식품, 통신 등 현지 인증 및 규제 통과 여부가 불투명함
제품 스펙 변경으로 인해 청구항(권리범위) 수정이 필요함
투자 유치나 정부 과제 일정상 6~12개월 뒤에야 자금 집행이 가능함
이런 상태에서 개별국 출원을 강행하는 것은 확정되지 않은 지도에 비싼 깃발을 꽂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PCT를 활용해 시간을 벌면 다음과 같은 대응이 가능해집니다.
실제 매출이 발생하거나 확정된 국가만 남기고 나머지는 포기(Drop)하여 비용 절감
경쟁사 동향이나 선행기술을 추가로 파악하여 청구항 재설계
제품 로드맵 확정 후, 핵심 실시예를 중심으로 데이터 보강
단,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PCT로 시기를 늦춘다고 해서 신규사항 추가(New Matter)가 자유롭게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초 명세서의 품질이 부실하다면, 30개월 뒤에 더 큰 비용을 들여 수습해야 하거나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PCT가 정답이 아닌 경우
물론 모든 상황에서 PCT가 유리한 것은 아닙니다. 다음의 경우에는 개별국 직접 출원(파리 루트)이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1) 수출 국가가 1~2개로 이미 확정된 경우
예: "우리는 미국과 일본 시장만 진입하면 끝이다."
이때는 PCT 국제단계 비용을 추가로 지출하고 시간을 끄는 것보다, 바로 해당 국가로 진입해 심사 결과를 빨리 받아보는 것이 비용과 속도 면에서 유리합니다.
2) 빠른 권리화가 사업의 필수 조건인 경우
예: 유통사와의 계약, 모조품 단속, 조달 및 입찰 조건으로 등록증이나 심사 진행 증명이 급하게 필요할 때입니다. PCT는 기본적으로 심사를 늦추는 절차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물론, PPH 등 조기심사 제도는 별론으로 합니다.)
3) 최초 명세서 품질이 현저히 낮은 경우
PCT는 좋은 원고를 오랫동안 살려두는 제도입니다. 원고(명세서) 자체가 부실하다면, 이는 전략적 유예가 아니라 비싼 연기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예산을 지키는 해외 출원 실행 프로세스
해외 특허 예산은 총액보다 언제, 어디에 쓰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다음 순서로 점검해 보시길 권장합니다.
기초 튼튼히: 우선권 주장 기초가 되는 국내 출원의 명세서 품질을 최우선으로 높입니다.
12개월 시점 판단: 수출국이 미정이라면 과감하게 PCT로 묶어둡니다.
중간 점검: 국제조사 결과와 사업 지표(매출, 파트너, 인증)를 종합해 진입 후보국을 추립니다.
30개월 전 결단: 들어갈 국가와 버릴 국가를 명확히 확정합니다.
국가별 전략: 핵심 국가는 심사청구 타이밍이나 보정 방향 등 별도의 심사 전략을 수립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4번입니다. PCT를 진행해 놓고 막상 30개월이 되었을 때 "그동안 쓴 돈이 아까우니 일단 다 들어가자"라고 결정한다면, 비용 폭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터지는 시점만 뒤로 밀린 것에 불과합니다.
출원비용 이후의 비용을 미리 고려해야 합니다
해외 특허출원 견적서들은, 초기비용을 최대한으로 낮춰서 저렴해보이도록 준비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심사청구비용을 빼고, 나중에 별도로 심사청구를 한다거나 하면 비용이 크게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최종적으로 특허증을 손에 쥘때까지 소요되는 비용에는 큰 차이가 없는 법입니다. 앞에서 아끼면 뒤에서 나가는 것이 당연한 법이기 때문이지요.
실무적으로는 출원비용만 따질 것이 아니라 진입 예정 국가별로 아래 항목을 정리해서 예산을 잡아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관납료 (출원 / 심사청구 / 연차료)
번역비 (명세서 분량 기준 예상치. 참고로 저는 2026년 1월부터 번역비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 내용 별도 포스팅을 통해 다룰 예정입니다.)
현지 대리인 비용 (출원 + 중간사건 대응 예상치)
OA 대응 횟수 (보수적으로 산정)
이 데이터가 있어야 막연한 감이 아니라, 구체적인 숫자에 근거하여 진입 국가를 줄이는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결론: PCT는 '결정을 유보해야 하는 기업'을 위한 안전장치
수출국이 명확히 정해진 기업이라면 개별국으로 직행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저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이나 수출 초기 기업은 1년 안에 모든 시장 상황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때 섣불리 개별국으로 흩어지면 현금 흐름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PCT는 초기 비용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확보한 30~31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반드시 진입 국가를 좁힐 수 있는 근거(매출, 파트너, 규제 통과 등)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PCT는 여러분에게 시간을 벌어줄 뿐, 사업적 결정을 대신 내려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