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 블로킹 특허의 마지막 한 수는 미래의 급소를 찍는 사람의 직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하나 생겼죠. 그래서 어떤 분야에 그 돌을 두는 게 좋으냐는 겁니다.
오늘은 그 땅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도 시작 전에 짚고 가죠. 이 모든 이야기는 인공지능으로 기술 발전에 가속이 붙는 세상을 전제로 한 추론이지, 단정이 아닙니다.
다시 짚는 조건: 닻을 내려야 오래 간다
2편에서 본 결론을 한 번 더 불러오겠습니다. 오래 가는 특허는 물리 법칙이나 규제에 닻을 내려야 한다. 알고리즘끼리 만난 길목은 금방 낡지만, 한쪽 다리가 물리나 제도에 묶여 있으면 그 길목은 오래 살아남는다고요.
그렇다면 던질 질문은 이겁니다. 어떤 분야에 그런 닻을 내릴 자리가 많을까? 같은 노력을 들여도, 닻 내릴 자리가 풍부한 땅에서 작업하는 게 훨씬 유리하겠죠.
챗봇은 닻 내릴 표면이 좁다
먼저 요즘 제일 뜨거운 순수 소프트웨어 AI를 봅시다. ChatGPT 같은 챗봇 말입니다.
이쪽은 몸이 없습니다. 화면 안에서 글자만 주고받죠. 그래서 닻을 내릴 물리적 표면이 거의 없습니다. 힘도 없고 마찰도 없고 부딪힐 일도 없으니, 자연 법칙에 묶을 자리가 안 보입니다.
규제는 어떨까요. 챗봇에도 규제가 걸리긴 합니다. 그런데 "출력이 안전한가", "유해한 말을 하지 않는가" 정도로 꽤 모호하게 걸립니다. "반드시 이 방식을 써야 한다"고 딱 떨어지게 못 박기가 어렵죠. 모호한 규제는 닻으로 쓰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순수 소프트웨어 AI는 닻을 내릴 표면 자체가 좁은 땅입니다.
로봇은 몸이 있다
로봇은 다릅니다.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죠. 몸이 있다는 겁니다.
로봇은 실제로 움직이고, 물건을 만지고, 사람과 부딪힙니다. 이 "몸이 있다"는 사실 하나가 닻 내릴 자리를 사방에서 만들어냅니다. 하나씩 보겠습니다.
첫째, 안전 규제가 몸에 직접 걸립니다. 로봇이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면 안전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규제가 "사람과 부딪힐 때 일정 힘 이상이면 반드시 멈춰야 한다" 같은 식으로 내려옵니다. 이건 모호한 규제가 아니라 측정해서 확인할 수 있는 물리 조건입니다. 챗봇의 "안전한 출력"과는 차원이 다르게 구체적이죠. 제도의 닻이 단단하게 박힙니다.
둘째, 접촉·힘·촉각은 물리 법칙에 직접 닿습니다. 로봇이 물건을 집고 사람을 피하는 일에는 마찰과 충돌이 끼어듭니다. 아무리 똑똑한 알고리즘을 깔아도 마찰의 물리, 충돌의 물리는 못 피합니다. 자연 법칙의 닻이 걸리는 자리죠.
셋째, 우회가 비쌉니다. 로봇을 우회하려면 새 센서, 새 관절, 새 몸체가 필요합니다. 이건 코드처럼 하룻밤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죠. 설계하고 만들고 양산해야 합니다. 하드웨어의 닻이 걸립니다.
같은 말을 뒤집으면 — 과장은 금물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럼 로봇 특허는 무조건 강하겠네?" 싶으실 텐데, 그렇게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한 발 빼고 정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로봇 분야에도 순수 알고리즘 특허는 수두룩합니다. 그런 특허는 로봇 분야라고 해서 강해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금방 낡죠. "로봇이니까 강하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정확한 표현은 이렇습니다. 로봇은 닻을 내릴 표면이 넓은 분야다. 분야 전체가 통째로 강한 게 아니라, 강한 자리를 만들 기회가 유난히 많은 땅이라는 거죠. 그 기회를 살리느냐 마느냐는 결국 어디에 어떻게 돌을 두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리하면
오래 가는 특허는 물리·제도에 닻을 내려야 하는데, 몸이 없는 챗봇은 그 닻 내릴 표면이 좁습니다. 반대로 몸이 있는 로봇은 안전 규제(제도), 접촉·힘·촉각(자연 법칙), 새 부품의 비용(하드웨어)까지 닻 내릴 자리가 풍부합니다. 단, 로봇이라 무조건 강한 게 아니라 강한 자리를 만들 기회가 많은 땅일 뿐입니다.
그럼 이제 손에 잡히는 이야기를 해볼 차례입니다. 로봇 분야에서 실제로 그 길목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말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로봇 분야의 여러 기술 흐름을 두 종류로 나눠 교차시키는 방법을 맛보기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똑똑함을 키우는 흐름과 몸에 닻을 내린 흐름, 이 둘을 엇갈려 묶으면 노려볼 만한 길목 후보가 우르르 쏟아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