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킹 특허가 무엇이고 저희가 어떤 순서로 찾는지는 ‘블로킹 특허는 영감이 아니라 공정으로 찍어낸다’에서 여섯 단계로 정리했는데요. 처음 오신 분이라면 그 글을 먼저 훑어보고 오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 여섯 단계 중 두 번째, 길목을 언제 어떻게 알아보느냐, 다시 말해 특허 출원 타이밍을 어떻게 읽느냐에 대해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표준이 나오면 그때 특허 내면 되지 않나요?
상담을 하다 보면 "업계 표준이 정해지면 거기에 맞춰서 특허를 내면 되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표준이 정해져야 어디가 중요한지 확실히 보이니까, 그때 잽싸게 출원하겠다는 거죠.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표준이 확정될 즈음이면 그 표준을 만든 회의실 안에 있던 회사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관련 특허를 깔아두었고, 논문도 쌓이기 시작해서 빈자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표준 문서가 공개되는 날은 출발 신호라기보다 사실상 결승선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무엇이 정해지는 순간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대신 누군가가 "이게 아직 없어서 문제다"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찾습니다. 이 글의 제목이 "아직 표준이 없다는 문장을 찾아라"인 이유가 그겁니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두 기술이 만나는 과정부터 보셔야 합니다.
두 기술은 세 단계를 거쳐 만납니다
블로킹 특허의 자리가 되는 길목은, 따로따로 발전하던 두 기술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그런데 두 기술이 어느 날 갑자기 한 논문 안에서 결합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대체로 세 단계를 거치는데요. 처음에는 한쪽 분야 문헌이 다른 쪽 분야 문헌을 인용하기 시작합니다. 이걸 저희는 "도달"이라고 부릅니다. 그다음에는 두 분야 사람들이 같은 용어, 같은 문제 서술을 쓰기 시작합니다. 서로 다른 말로 부르던 것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되는 "언어 수렴" 단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야 한 논문, 한 특허 안에 두 기술의 결합이 등장합니다. 기술이 만나기 훨씬 전부터 언어가 먼저 비슷해진다는 건 연구로도 확인되고 있는데, 그 이야기는 ‘기술은 만나기 수십 년 전부터 같은 말을 쓴다’에서 따로 다룹니다.
진입 적기는 두 번째, 언어 수렴 단계입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 결합 문헌이 쌓이기 시작하면 이미 늦습니다. 그때부터는 여러 그룹이 동시에 그 자리를 채우고 있어서, 출원을 해도 선행문헌에 걸리거나 비슷한 시기의 남의 출원과 부딪히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실제로 찾는 건 "서로 인용은 하는데, 둘을 결합한 문헌은 아직 없는 쌍"입니다. 서로를 의식하고는 있는데 아직 아무도 손을 잡지 않은 상태, 그 짧은 틈이 후보가 됩니다.
정해지는 것 말고, 없다는 말을 보세요
언어 수렴 단계를 알아보는 제일 좋은 방법이 결핍 신호를 보는 겁니다. 결핍 신호란 "X가 아직 없다는 게 문제로 언급되기 시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논문 저자가 서론 끝에 "이 둘을 함께 평가하는 기준은 아직 정의되지 않았다"고 쓰거나, 표준 위원이 회의 자료에 "이 부분은 합의된 방식이 없다"고 적거나, 업계 기자가 "업체마다 측정 방식이 제각각이라 비교가 어렵다"고 쓰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그 문장이 나중에 특허 명세서의 "해결하려는 과제"가 됩니다. 남이 과제를 대신 써준 셈이죠.
재미있는 건, 그 문장을 쓴 사람은 대부분 그 문제를 직접 풀 계획이 없다는 점입니다. 논문 저자는 자기 분야의 문제를 풀다가 옆 분야와 맞닿는 부분에서 "여기는 아직 아무도 정하지 않았다"고 한 줄 남기고 지나갑니다. 자기 분야가 아니니까요. 표준 위원은 문제를 지적하는 게 일이라 해법을 특허로 내는 데는 관심이 덜하고, 기자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장은 꽤 오랫동안 주인 없는 과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이런 문장 하나에서 바로 특허 후보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남의 논문 서론 마지막 단락 같은 데서 얻는 건 그 분야 기술이 어디로 가려는지 유추할 수 있는 힌트 정도입니다. 그런 힌트가 여러 개 모여야 겨우 길목을 찾는 데 도움이 되고, 쓸 만한 후보는 길목을 찾은 다음 플러스알파까지 붙어야 비로소 나옵니다.
신호는 네 단계로 옵니다
결핍 신호도 한 번에 오지 않고 단계를 밟아 옵니다. 첫 번째(A)는 결핍 언급입니다. "정의가 없다", "표준이 없다", "합의가 없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B)는 임시 지표가 돌아다니는 단계입니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수치가 기사에 인용되고, 회사마다 같은 걸 다른 용어로 부르면서 각자 자기 방식으로 재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C)는 형식화가 시작되는 단계입니다. 표준기구에서 새 작업 항목이 생기고, 규제 당국이 초안을 내놓고, 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꾸립니다. 그리고 네 번째(D)는 관련 논문과 특허가 눈에 띄게 쌓이기 시작하는 단계인데, 이건 신호라기보다는 종료 신호입니다. 이 단계에서 처음 알게 됐다면 그 자리는 웬만하면 접는 게 맞습니다.
앞 단계일수록 남은 시간이 깁니다. A에서 알아채면 여유 있게 마찰을 분석하고 제약을 모을 수 있고, C에서 알아채면 서둘러야 하고, D에서 알아채면 대개는 늦었습니다. 그러니 같은 자리라도 언제 알아채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게임이 되는 거죠. 다만 각 단계 사이가 얼마나 걸리는지는 분야마다 다릅니다. 소프트웨어끼리의 결합은 A에서 D까지 금방 지나가 버리고, 하드웨어나 인증이 걸린 결합은 훨씬 느리게 갑니다.
주제어 말고 결핍 표현으로 검색합니다
신호를 찾을 때 대부분은 주제어로 검색합니다. "자율주행 안전", "배터리 충전 통신"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이렇게 찾으면 이미 그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문헌, 즉 이미 결합이 끝난 문헌만 잔뜩 나옵니다. 저희가 찾고 싶은 건 아직 결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기가 비어 있다"고 말하는 문장이니까, 검색어도 결핍을 말하는 표현으로 바꿔야 합니다. 영어 논문이나 표준 문서에서 자주 보이는 표현을 몇 개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영어 표현 | 대략의 뜻 |
|---|---|
no standard exists | 표준이 없다 |
not yet defined | 아직 정의되지 않았다 |
remains an open question | 여전히 열린 문제다 |
there is no agreed ~ | 합의된 ~가 없다 |
has not been established | 확립되지 않았다 |
lacks a standardized ~ | 표준화된 ~가 없다 |
no consensus on ~ | ~에 대한 합의가 없다 |
이 표현을 관심 분야의 주제어와 같이 걸어서 찾으면, 결과가 확 달라집니다. 주제어로만 찾을 때는 안 보이던, 두 분야가 맞닿는 틈새에서 나온 한 줄들이 걸려 나오거든요. 저희는 이런 검색을 AI의 도움을 받아 매주 훑고 있는데, 걸려 나온 문장 하나하나가 진짜 길목인지, 아니면 그냥 아무도 관심 없는 빈칸인지는 사람이 읽고 판단합니다.
회사 엔지니어가 직접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작업을 꼭 전문가만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자기 분야를 제일 잘 아는 건 그 회사 엔지니어라서, 몇 가지 습관만 들이면 꽤 좋은 신호를 먼저 잡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글 스칼라 같은 논문 검색에서 위 결핍 표현과 자사 주력 기술 키워드를 같이 넣고 알림을 걸어두는 방법이 있습니다. 관련 표준기구의 뉴스나 신규 작업 항목 공지를 정기적으로 훑어보는 것도 좋고요. 규제 당국이 초안을 내고 공개 의견을 받을 때 업계에서 낸 의견서를 읽어보면, "이 부분은 기준이 없어서 곤란하다"는 하소연이 꽤 솔직하게 나옵니다. 업계 전문지 기사에서 "업체마다 기준이 다르다"는 문장이 보이면 그것도 메모해 두시고요.
이렇게 모은 문장을 한 군데 쌓아두고 몇 달 지켜보면, 같은 결핍이 다른 사람 입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게 보입니다. 그게 언어 수렴의 신호입니다. 처음엔 대충 모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혼자 하다 보면 바빠질 때 흐지부지되기 쉬우니, 처음부터 알림이나 자동 수집으로 걸어두시는 걸 권합니다.
얇다고 다 기회는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꼭 짚어둘 주의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결핍 신호를 찾고 관련 문헌을 검색했더니 결과가 아주 얇게 나왔다고 해서, 무조건 빈자리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문헌이 얇다는 건 두 가지를 뜻할 수 있거든요. 정말로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거나, 아니면 다른 산업에서 이미 오래전에 다른 이름으로 해결해 버렸거나. 특히 후자는 대상 분야의 용어로만 검색하면 절대 안 보여서, 오히려 최고의 후보처럼 보이는 함정이 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용어가 아니라 "그게 무슨 일을 하는가"로 기능을 번역해서 인접 산업까지 다시 검색합니다. 이 함정에 대해서는 ‘블로킹 특허 후보가 죽는 네 가지 이유’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아직 표준이 없다"는 문장은 생각보다 자주 보이는데, 그걸 특허 출원 타이밍으로 읽어내는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 분야에서 지금 어떤 결핍 신호가 나오고 있는지, 그게 블로킹 특허를 노려볼 만한 길목인지 궁금하시다면, 문의 폼에 주력 기술 분야와 최근 눈에 밟히던 업계 이슈를 간단히 남겨주세요. 함께 검토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