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 같은 길목이라도 물리 법칙이나 규제에 닿아 있는 길목만 오래 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한마디 흘렸죠. 정작 어려운 건 그런 길목을 어떻게 찾아내느냐라고요.
오늘은 그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도 시작 전에 한 번 짚고 가죠. 이 모든 이야기는 인공지능으로 기술 발전에 가속이 붙는 세상을 전제로 한 추론이지, 단정이 아닙니다.
좋은 길목은 우연히 발견되지 않는다
블로킹 특허라고 하면 "어느 날 천재가 무릎을 탁 치고 떠올린 한 방"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길목은 영감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정해진 순서를 밟아 체계적으로 후보를 만들고 걸러내는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아니라 하나의 공정이라는 거죠. 마치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 정찰하고 예측하고 도출하고 가지치기하는 단계를 거칩니다.
말로만 하면 막연하니 단계별로 풀어보겠습니다.
1단계. 주요 선수부터 살핀다
먼저 이 분야를 누가 이끌고 있는지부터 파악합니다. 어떤 기업, 어떤 연구실이 앞서가고 있고, 지금 기술 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봅니다. 운동 경기로 치면 어떤 선수들이 뛰고 있는지, 지금 점수가 몇 대 몇인지 확인하는 단계죠.
2단계.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읽는다
다음은 방향 판단입니다. 앞서가는 기업들의 특허와 연구자들의 논문이 어느 쪽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읽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기술은 보통 한 줄기로 흐르지 않습니다. 여러 흐름이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죠. 한쪽에서는 똑똑하게 만드는 흐름이, 다른 쪽에서는 더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흐름이 따로따로 전진합니다.
3단계. "어디로 가든 거쳐야 할 관문"을 찾는다
이게 핵심 단계입니다. 여러 흐름이 결국 만난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길목이 어디일지를 묻습니다.
여기서 흔히 오해하는 게 있습니다. "그럼 5년 뒤 기술이 정확히 어디 가 있을지를 맞히는 거냐"고요. 아닙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5년 뒤 좌표를 콕 집어 맞히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맞히는 대신 어디로 가든 걸리는 자리를 잡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이사 갈 동네를 정확히 맞히는 건 어렵지만, "어느 동네로 가든 결국 이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건 압니다. 그 다리에 미리 자리를 잡는 겁니다. 정확한 목적지를 모르고도 길목은 잡을 수 있는 거죠.
4단계. 후보를 쳐낸다
이렇게 하면 길목 후보가 여러 개 나옵니다. 이제 가지치기를 합니다. 세 가지 조건을 다 만족하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립니다.
하나, 아직 아무도 선점하지 않았을 것. 이미 남이 권리를 잡은 자리는 의미가 없죠. 둘, 진보성이 있을 것. 누구나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조합이면 특허로 보호받지 못하는데, 이건 뒤편에서 따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셋, 물리 법칙이나 규제에 닻을 내렸을 것. 지난 편에서 본 그 조건입니다. 이 셋을 다 통과한 후보만 살아남습니다.
5단계. 빗나가면 일찍 접을 신호를 미리 정해둔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합니다. "내 예측이 맞다면 1~2년 안에 어떤 일이 보여야 한다"를 미리 정해두는 겁니다. 특정 안전 기준이 발표된다거나, 특정 방향의 연구가 쏟아진다거나 하는 신호죠.
왜 이걸 미리 정해둘까요. 베팅이 빗나갔을 때 일찍 손절하기 위해서입니다. 정해둔 신호가 안 보이면 "아, 내 예측이 틀렸구나" 하고 일찍 접는 거죠. 신호가 없으면 틀린 베팅을 붙들고 몇 년을 허비할 수 있거든요.
같은 말을 뒤집으면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뒤집어 보면 이렇게 됩니다. 블로킹 특허는 천재의 영감이 아니라, 누구든 이 공정을 충실히 밟으면 후보를 뽑아낼 수 있는 체계적인 작업이라는 겁니다. 적어도 여기까지는요.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공정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닙니다. 정찰하고 방향을 읽고 후보를 추리는 데까지는 순서를 밟으면 됩니다. 하지만 그 후보들 중에서 "이 길목이 진짜 미래에 중요해질 자리다" 하고 최종으로 찍는 일, 그건 공정만으로는 안 됩니다.
정리하면
블로킹 특허 만들기는 영감 한 방이 아니라 정찰 → 방향 판단 → 관문 도출 → 가지치기 → 신호 달기로 이어지는 공정입니다. 정확한 미래를 맞히는 게 아니라 어디로 가든 걸리는 자리를 잡는 게 핵심이고요.
그런데 이 공정에는 사람만이 채울 수 있는 한 칸이 있습니다. 후보들 중에서 진짜 급소를 골라내는 자리, 데이터만으로는 안 되고 그 분야 최고 기술자의 직관이 들어가야 하는 자리죠.
다음 편에서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바둑 고수가 지금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자리에 돌을 미리 두는 것처럼, 블로킹 특허에서 사람의 직관이 어디에 들어가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