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 강한 특허란 누구든 그 기술을 하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을 막는 것이고, 그 길목은 서로 다른 두 기술 흐름이 만나는 교차점에 생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단서를 하나 빼먹었습니다. 아무 길목이나 다 좋은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시작 전에 이번에도 한 번 짚고 가죠. 이 모든 이야기는 인공지능으로 기술 발전에 가속이 붙는 세상을 전제로 한 추론이지, 단정이 아닙니다.
특허는 20년을 가도, 그 길에 아무도 안 살면 휴지가 된다
먼저 깔고 갈 게 하나 있습니다. 특허는 한 번 등록되면 원칙적으로 20년간 유효합니다. 꽤 긴 시간이죠.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특허가 20년간 살아 있다는 것과, 그 특허가 20년간 돈이 된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특허는 어떤 기술을 막는 권리인데, 그 기술을 아무도 안 쓰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막을 사람이 없으니 권리는 멀쩡히 살아 있어도 그냥 종이 쪼가리가 됩니다.
기술은 점점 빨리 발전합니다. 오늘 막아둔 길목이 내년이면 아무도 안 다니는 옛길이 될 수 있습니다. 더 좋은 방법이 나오면 사람들은 그쪽으로 몰려가 버리니까요. 업계에서는 이걸 '기술 진부화'라고 부릅니다. 특허는 살아 있는데 그 특허가 지키는 기술에 아무도 안 사는 상태, 이게 진부화입니다.
그래서 좋은 길목을 고를 때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겁니다. "이 길목,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계속 지나갈까?"
우회하기 어려운 순서대로 줄을 세워보면
같은 길목이라도 우회하기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우회가 어려울수록 오래 가는 좋은 길목이겠죠. 그 우회 난이도로 줄을 한번 세워보겠습니다.
가장 약한 건 알고리즘, 그러니까 소프트웨어입니다. 코드는 무한히 다시 짤 수 있습니다. 더 좋은 방법이 나오면 옛날 코드는 그냥 버려지죠. 제가 취미로 코딩을 좀 하는데, 같은 기능을 짜는 방법이 정말 수십 가지입니다. 그러니 소프트웨어 길목은 우회로가 사방에 뚫려 있는 셈입니다. 막아봐야 옆으로 돌아갑니다.
그 다음이 하드웨어입니다. 하드웨어를 우회하려면 실제 물건을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코드처럼 하룻밤에 다시 짜는 게 아니라, 새 부품을 설계하고 만들고 양산해야 하죠. 시간과 돈이 듭니다. 그만큼 우회가 어렵습니다.
더 강한 건 자연 법칙입니다. 힘, 열, 마찰 같은 건 물리적으로 피할 수가 없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마찰은 마찰이고 충돌은 충돌입니다. 이런 물리적 병목 위에 세운 길목은 기술이 어디로 가든 그 위를 밟고 지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강한 건 규제·인증입니다. "안전하려면 반드시 이 방식을 써야 한다"고 법이 정해 버리면, 기술이 어디로 가든 그 관문을 거쳐야 합니다. 왜 규제가 제일 강할까요. 규제는 기술과 다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저 멀리 달려나가도 규제는 제자리에 박혀 있어서, 결국 기술이 그 관문 앞으로 되돌아와 도장을 받아야 합니다.
같은 말을 뒤집으면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뒤집어 보면 결론이 명확해집니다.
소프트웨어끼리 만난 교차점은 아무리 절묘해도 금방 낡습니다. 양쪽 다 우회로가 많으니까요. 반대로 한쪽 다리가 물리 법칙이나 규제·인증에 닿아 있는 교차점은 오래 갑니다. 그쪽 다리는 기술이 발전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좋은 길목의 조건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두 다리 중 최소한 하나는 물리(하드웨어·자연법칙)나 제도(규제·인증)에 닻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다른 다리, 그러니까 빨리 낡는 알고리즘 쪽 다리가 휴지가 돼도 특허 전체는 살아남습니다. 한쪽 닻이 길목을 붙들어 주는 거죠.
지난 편에서 "어떤 교차점이냐"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사실 "그 교차점이 물리·제도에 닻을 내렸느냐"가 진짜 승부처입니다. 이게 특허의 수명을 결정합니다.
정리하면
블로킹 특허는 길목을 막는 것이고, 그 길목 중에서도 물리·제도에 닻을 내린 길목만 오래 갑니다. 우회 난이도로 보면 알고리즘이 가장 약하고, 하드웨어, 자연법칙을 거쳐 규제·인증이 가장 강합니다.
말로 정리하니 깔끔해 보이는데, 정작 어려운 건 따로 있습니다. 그런 길목을 어떻게 찾아내느냐입니다. 좋은 길목이 길 가다 우연히 눈에 띄는 게 아니거든요.
다음 편에서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 길목 찾기가 사실은 번뜩이는 영감 한 방이 아니라, 정해진 순서를 밟는 하나의 공정이라는 것. 그 공정을 단계별로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