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만들어서 마진 남기느니, 차라리 특허로 돈을 벌자."
이 말이 허세가 아니라 진짜 경영적인 결단이 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2000년대에서 2010년대 초반 미국 시장이 그랬는데요. 제조하고 유통하느라 고생하는 대신, 쌓아둔 특허로 수익을 내는 쪽에 베팅하는 회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오늘은 그 초기 모델을 대표하는 재미있는 사례들을 풀어보겠습니다.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공개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지만, 이 중에는 제가 직접 핸들링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삥 뜯기는 우리 기업 쪽 대리인이었지요.
"LED는 모두의 미래다. 대신 로열티는 내라" — 필립스의 조명 특허 라이선싱
LED가 본격적으로 세상을 바꾸기 직전, 시장에는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LED로 세상을 밝혀보려는 제조사들이 한쪽에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LED가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데 필요한 특허를 미리 쌓아둔 쪽이 있었습니다.
필립스가 꺼내든 카드는 특허 라이선스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지금은 조명 사업이 시그니파이라는 회사로 분리됐는데요. 이름부터 당당했어요. EnabLED. "LED 시장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뉘앙스죠. 2008년에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LED 조명기구와 전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특허를 한 묶음으로 모아서, 전 세계 업체들이 여기에 '가입'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제품을 만들려면 피하기 어려운 기본적인 제어나 시스템 레벨의 특허를 미리 깔아둔 거예요. 그리고 "LED를 만들고 싶으면 우리 프로그램에 가입해서 돈을 내라"고 한 겁니다.
이런 라이선스 프로그램은 보통 한 번에 크게 한 방 뜯어내는 것보다, 매출에 연동해서 가입자를 최대한 많이 모으는 쪽이 더 돈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안내 자료에도 로열티가 매출 기준 퍼센트로 제시됐어요. 예를 들면 전구는 매출의 5퍼센트에 개당 최소 단가를 더하는 식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로열티를 거둬간 겁니다.
특허를 마치 산업 인프라 요금처럼 설계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기 쓰면 전기요금 내듯, LED 만들면 특허요금 내라는 식이죠.
"VHS 복사? 그건 안 됩니다" — 매크로비전의 라이선스 제국
다음 이야기는 훨씬 드라마틱합니다.
80년대에서 90년대, 비디오 대여점 전성기였죠. 영화 한 편이 비디오테이프에 담겨 집집마다 흘러들어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콘텐츠 회사들은 밤잠을 설쳤어요. "사람들이 한 번 빌려서 그냥 복사해버리면 끝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여기서 등장한 게 매크로비전입니다. 이 회사의 복사방지 기술은 간단히 말하면 이런 식이었어요. 텔레비전으로는 그럭저럭 잘 보이는데, 비디오 녹화기로 녹화하려고 하면 화면이 흔들리거나 밝기가 들쭉날쭉해져서 못 쓰게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80년대 중반부터 비디오에 적용되기 시작했죠.
매크로비전이 특허 수익화 초창기 모델로서 재미있는 이유는, 이게 단순히 기술을 납품하는 게 아니라 라이선스 사업으로 굴러갔다는 점입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DVD, 가전 생태계가 커질수록 복사방지는 선택이 아니라 산업의 필수 기능이 됐고요. 매크로비전은 바로 그 지점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미국 특허청 보고서에서도 이 회사를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주요 공급자로 언급할 정도였는데요. 나중에는 비디오를 넘어 CD롬 복사방지나 디지털 저작권 관리 쪽으로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이 모델의 짜릿한 부분은 이겁니다. 제조 라인에 재고를 쌓아둘 필요가 없습니다. 공장 돌리다가 불량률 때문에 머리 쥐어뜯을 일도 없고요. 대신 산업이 커질수록 같이 커지는 로열티를 챙겨가는 겁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예 회사 정체성 자체가 바뀝니다. 매크로비전이 로비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지식재산권 경영 쪽으로 자리를 잡은 것도 같은 흐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어요. 물건을 팔아서 버는 게 아니라, 업계가 굴러가는 데 꼭 필요한 기능의 사용료로 버는 회사가 된 거죠. 특허 수익화의 초창기 사례 중에서도 가장 교과서 같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공장 대신 연구실을 택했다" — 처음부터 라이선싱만 하는 회사
한편 어떤 회사들은 아예 처음부터 방향이 달랐습니다. "우리는 제조를 안 한다. 대신 기술을 만든다. 그리고 라이선스를 판다." 이런 회사들이죠.
인터디지털이 대표적입니다. 스스로를 무선이나 영상 같은 분야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라이선싱하는 회사라고 소개하는데요. 실제로 최근까지도 대형 플랫폼 기업을 상대로 특허 소송이나 라이선스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2025년에도 아마존을 상대로 한 소송이 보도됐을 정도예요.
이런 유형은 매크로비전처럼 복사방지 같은 특정 제품이나 기능에서 출발한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표준이나 생태계가 커질수록 라이선싱이 같이 커지는 산업 구조를 전제로 움직이는 거죠.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제품은 남이 만들고, 자기들은 그 위로 기술 사용료가 흘러가도록 길을 깔아두는 겁니다. 특허 수익화 사업이 단발성 수익이 아니라 회사의 핵심 사업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죠.
그럼 지금도 통할까요?
사실 특허 수익화 비즈니스가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인 2010년 전후입니다. 제조를 내팽개치고 특허권만으로 돈을 벌겠다고 뛰어든 회사들의 무용담이 넘쳐났던 것도, 그 시절에나 볼 수 있던 광경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이후 미국의 특허 수익화 비즈니스는 발전하면서 크게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하나는 기술을 직접 개발해서 피하기 어려운 특허 묶음을 확보하고, 그걸 바탕으로 라이선싱을 본업으로 삼는 회사입니다. 다른 하나는 특허를 사 모아서 권리 행사, 그러니까 소송을 통해 수익을 내는 쪽이고요. 흔히 특허괴물이라고 부르는 회사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특허괴물들이 한때 특허 소송으로 어떻게 재미를 봤는지, 왜 지금은 예전만큼 쉽게 재미를 보기 어려워졌는지, 그리고 인공지능이 이 게임의 규칙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지. 이 이야기는 앞으로 몇 편에 걸쳐 이어서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