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서 인공지능의 등장이 특허 실무에 두 가지 상반된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이제 특허는 끝났다", 또 하나는 "특허의 가치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커진다"는 것이었죠. 오늘은 그 중 첫 번째, 어두운 쪽 이야기부터 풀어보겠습니다.
조금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습니다. "특허제도는 망한다." 물론 단정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인공지능이 지금 속도로 특허 심사에 들어온다면, 우리가 알던 방식의 특허는 대부분 살아남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를 알고 나면, 이 자극적인 제목이 그렇게 과장만은 아니라는 걸 느끼시게 될 겁니다.
특허 심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부터
특허제도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아주 간단히만 깔고 가겠습니다.
누군가 특허를 출원하면, 특허청의 심사관이 그 출원과 가장 비슷한 선행기술(이미 세상에 나와 있던 기술)을 찾습니다. 그리고 출원된 발명과 선행기술 사이의 차이점을 뽑은 다음, 그 차이점에 해당하는 내용이 적혀 있는 또 다른 선행기술들을 여러 개 찾아서 "이건 이미 있던 것들을 조합한 것에 불과하다"는 거절이유를 구성합니다. 이게 심사관의 일입니다.
반대로 변리사는 그 거절이유의 빈틈을 파고듭니다. 특허 명세서 안에서 선행기술에는 없는 표현을 찾아내, "여기 이 부분은 기존 기술로는 쉽게 생각해낼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해 특허를 받아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양쪽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빈틈이 있고, 또 융통성도 있습니다. 심사관도 사람인지라 키워드로 검색되지 않는 선행기술은 놓칠 수 있고, 논리를 구성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변리사는 바로 그 빈틈과 융통성 사이에서 특허를 살려내는 겁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 인공지능이 끼어들면 어떻게 될까요.
이미 시작된 일입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초기에 도입된 건 주로 비전(Vision) 모델, 그러니까 이미지를 알아보는 인공지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박람회에서 우리 기업이 뿌린 홍보물에 찍힌 제품 사진을 인공지능이 찾아내서, 그 사진을 근거로 우리 기업이 출원한 디자인을 거절시키는 일이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사람이라면 "박람회 홍보물 사진"까지 뒤져서 찾아낼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인공지능은 해냅니다.
그리고 ChatGPT 같은 LLM(거대 언어모델)은 한 단계 더 나갑니다. 특허에 적힌 개념을 추상적으로 요약한 다음, 그와 비슷한 컨셉의 선행기술을 순식간에 찾아줍니다. 사람이 조사하면 한나절은 걸릴 일을 단 몇 초 만에 합니다. 그것도 영어·일본어·중국어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 거의 모든 언어의 문헌을 뒤져서 말입니다.
실제로 지식재산처는 2026년 특허심사 처리계획에서 인공지능 분야 심사관을 새로 채용하고, 선행기술조사 예산을 대폭 늘려 잡았습니다. 흐름은 이미 정해졌다고 봐야 합니다.
출원인은 알파고를 상대하는 이세돌이 된다
상당수 변리사들이 이미 이 변화를 두렵게 느끼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비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특허청 심사관은 부실한 권리가 등록되지 않도록 막는 골키퍼입니다. 그리고 변리사는 그 골키퍼가 지키는 골대에, 특허권자를 위해 골을 넣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원래도 쉬운 경기가 아닙니다. 골키퍼 자리에 박사 학위를 가진 심사관들이 버티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그 골대를 인공지능이 함께 막아주기 시작합니다. 심사 과정에서 선행기술을 인공지능이 찾아내기 시작하면, 출원인과 변리사는 알파고를 상대하는 이세돌의 입장이 됩니다. 한두 판은 명승부를 펼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집니다. 사람의 빈틈을 파고들던 변리사의 기술이, 빈틈이 없는 상대 앞에서는 통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같은 말을 뒤집으면
여기까지만 보면 암울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같은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말해보겠습니다.
인공지능 도입으로 특허 심사 품질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겁니다. 심사 과정에서 부실한 권리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크게 낮아지겠죠. 이렇게 표현하면 굉장히 긍정적인 이야기가 됩니다. 실제로 제도 전체로 보면 바람직한 방향이고요.
그런데 이 말을 특허를 받으려는 출원인의 입장에서 다시 하면 이렇게 됩니다. 이제 특허청 심사를 통과할 특허가 별로 없어진다. 설령 통과한다 해도, 권리범위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깎이지 않고 멀쩡하게 등록받는 일은 극히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특허가 이렇게 죽거나 반쯤 죽은 채로 등록되는 시대. 이게 제가 "특허제도는 망한다"고 자극적으로 표현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안 죽는 특허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 시리즈가 시작됩니다.
모든 특허가 휴지가 되는 건 아닙니다. 이 살벌해진 심사를 뚫고 살아남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인공지능 시대에 가치가 천문학적으로 뛰어오를 특허가 극소수 존재합니다. 저는 그런 특허를 블로킹 특허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는 특허"입니다.
대부분이 0원이 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그런 특허를 알아보고, 또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그리고 그 변화가 우리 기업과 국가의 지식재산 전략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앞으로 몇 편에 걸쳐 이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미리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이 모든 이야기는 "인공지능으로 기술 발전에 본격적으로 가속이 붙는다면"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단정적인 예측이 아니라, 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때 성립하는 조건부 전망입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는 특허"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그 정체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