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제가 한국지식재산보호원의 요청으로 "제2의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는 NPE 특허소송"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특허괴물들이 예전만 못하다"는 체감이 분명 있었거든요. 그리고 2020년대를 지나오면서 판은 더 달라졌습니다.
정보의 비대칭과 심리전으로 거액을 뜯어내던 2010년대 특허괴물의 낭만이라면 낭만이랄 것이 저물었고요. 대신 숫자와 증거와 전략으로 더 빠르게 결론이 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재미난 비즈니스가 종말을 고했느냐. 아니요. 오히려 최근에는 특허괴물 소송이 다시 늘었다는 데이터가 계속 나옵니다. 다만 돈 버는 방식이 바뀌었어요. 예전처럼 겁만 줘서 돈 받는 모델은 약해지고, 이제는 이길 만한 케이스에 집중하거나 특허 묶음, 표준특허, 특정 법원 같은 정교한 지렛대를 더 많이 씁니다.
아래에서는 2020년대 들어 왜 과거만큼 극성을 부리기 어려워졌는지를 실무 감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사실 이번 글은 앞선 글들보다 재미가 좀 덜할 수도 있는데요. 곧 이어질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특허와 특허 수익화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기본 지식 정도로 생각하고 따라와주세요.
특허를 빠르게 무효로 만드는 칼이 생겼다
2010년대 초반에는 미국 기업 편에 서는 텍사스 동부 연방지방법원에서 끝장을 보자는 게 기본 옵션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특허청 산하 심판부의 무효 절차가 분쟁 대응의 기본이 됐어요.
피고 입장에서는 싸움의 규칙을 바꾸는 버튼이 하나 생긴 셈입니다. "어차피 시간을 끌면 피고가 지친다"는 전제가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게 된 거죠. 특허 소송 한 건에 기본으로 30억씩 깔고 가던 소송 남발의 시대도 이걸로 저물었습니다. 특허 자체를 무효로 만들어버리는 게 훨씬 저렴하거든요.
소프트웨어 특허는 예전만큼 마구 휘두르기 어렵다
2014년 미국 대법원의 한 판결(앨리스, Alice 판결) 이후로, 특히 소프트웨어나 비즈니스 방법 계열은 "그게 애초에 특허받을 수 있는 대상이냐"가 큰 변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골치 아픈 미국 특허법 101조의 대상적격 거절을 해소하는 방법을 다룬 적이 있는데요. 이 조항은 특허괴물에게도 양날의 검입니다. 애매한 특허로 공포 마케팅을 하던 시절에는 도움이 됐지만, 지금은 반대로 "그건 특허받을 자격조차 없는 기준 미달 특허다"라고 판단받을 위험이 커졌으니까요.
대충 던지는 소송은 비용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역시 2014년의 또 다른 판결(옥테인 피트니스, Octane Fitness 판결) 이후로, 예외적인 사건에서는 패소한 쪽이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줄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미국 특허법 285조가 그 근거인데요.
현실적으로 비용을 전가하는 일이 흔하진 않더라도, "피고가 끝까지 버티면 우리도 얻어맞을 수 있다"는 심리적인 억제력이 생긴 거죠. 특허괴물들이 예전처럼 소송을 막 던지기 어려워진 배경 중 하나입니다.
유리한 전장을 아무 데나 고를 수는 없다
2017년에는 어느 법원에 소송을 걸 수 있는지, 그 관할 선택이 제한되면서(TC 하트랜드, TC Heartland 판결) 소송 지형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그전에는 피고 회사가 그 지역에서 제품을 팔기만 해도, 심지어 유통만 돼도 그 지역 법원에 소송을 거는 게 가능하다고 해석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특허괴물들은 다 텍사스 동부 연방지방법원으로 갔습니다. 미국 기업이 외국 기업, 예를 들어 삼성전자 같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면 미국 기업 편을 들어주는 성향이 강했거든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선호되는 법원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텍사스 동부에 다 몰아넣고 끝내버리는 건 더 이상 쉽지 않습니다.
결정적 변화: 정보 비대칭이 빠르게 줄었다
이게 2020년대 체감 변화의 핵심입니다.
경고장을 받으면 예전에는 "이거 진짜 맞나?" 하고 확인하는 데만도 시간이 한참 걸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핵심 청구항, 침해 포인트, 회피설계, 선행기술, 소송 이력을 빠르게 1차로 훑어내는 게 엄청나게 빨라졌습니다. 내부 보고가 빨라지니 경영진도 공포가 아니라 숫자를 보고 의사결정을 하고요.
다시 말해 심리전으로 몰아세울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진 겁니다. 특허괴물도 그래서 더 정교해질 수밖에 없어요. 다 인공지능 덕분이지요.
그런데 왜 종말은 아니냐
재밌는 건, 판이 이렇게 합리적으로 바뀌었는데도 특허괴물 소송은 최근 다시 증가세라는 점입니다.
이건 "예전 방식이 죽었다"는 것과 "비즈니스가 죽었다"는 게 서로 다른 얘기이기 때문이에요. 예전에는 불확실성 그 자체를 팔았다면, 그러니까 겁을 줘서 돈을 받았다면, 지금은 이길 만한 싸움에 집중하는 쪽으로 옮겨간 겁니다. 데이터와 특허 묶음, 법원 선택, 표준특허 같은 무기를 들고서요.
그럼 인공지능이 모든 걸 바꿔놓을 가까운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어떤 이야기는 쉽게, 또 어떤 이야기는 좀 더 깊게 풀어나가보려 합니다. 확실한 건 하나입니다. 이 비즈니스는 점점 더 재미있어질 거라는 점이죠.
※ 2019년 기고문 「제2의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는 NPE 특허소송」 원문은 아래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kipo.go.kr/ko/kpoBultnDetail.do?aprchId=BUT0000048&ntatcSeq=16384